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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2 5월 1일자 100분토론 감상평. 6
일단 내용은 친일인명사전에 관련된
일명 '좌파 역사학'vs'뉴라이트 역사학'의 공개적인 정면격돌이었다.
(아래서부터는 강조표시 뺀다. 이유는 귀찮아서)

참여 토론자는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vs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역사학계에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겠지만 진짜 거물급 인사들이 모였다...ㄷㄷ)

MBC에서 의도적으로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트장 좌측에 윤경로, 박한용씨가 자리를 잡고
우측에 주익종씨와 홍진표씨가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마치 좌/우의 대립을 형상화 한듯. (센스있어..MBC)

대충 포스터로 만들자면 멘트가 "좌파vs우파 정면격돌!!" 정도랄까?

결과적으론 6년간의 작업에 걸친 탄탄한 자료를 바탕으로한 좌파 역사학계의 우세승으로 보인다. 뭐, 근거로 제시한 자료가 부족했으며 다방면에 걸친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던 뉴라이트측의 캐발살이랄까.
(그렇다고 "뉴라이트가 틀렸다!!" 라는건 아니고. 역사학같은 인문학은, 길은 여러개지만 답은 하나인 이공학도 아니고, 그야말로 허허벌판에서 자신의 뜻에 따라 믿음을 찾는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틀렸다!"가 아니라 "동의할 수 없다!"가 되어야 한다)

휴학생이라 공부한지 오래되어서 자료를 들거나 자세한 인용은 힘들고
그냥 논란이 되었던 부분만 간단하게 포스팅하겠다.

아, 노파심에서 적는거지만,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일반적인' 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할텐데.. 이는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것이 아니고, 그냥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뜻으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소수자는 존재하며, 일반자와 이반자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1. 당위성
토론과정중에 잠깐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왜 친일인명사전 제작을 지금 해야하는가?..이다.
뭐.. '친일파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미 늦은감이 있긴 하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정치적 목적이 없는가?' 인데.. 음.. 복잡하다. 패스 =_=
저~ 아래쪽에 좀 더 설명을 하겠다.


2. 기준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진짜 고성이 오갔다..ㄷㄷ
이 부분이 가장 골때린 부분이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무척 쉽지만,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정말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되겠다.

보통 논문을 작성할 때, 서론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용어 설명"

논문의 내용을 통괄하는 용어를 정의내리는 것은 그 논문의 주제를 명확히 밝히고, 그 논문의 방향을 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물며 하나의 세계관 창조나 다름없는 '사전'이라면 어떠하랴.
(그래서 백과사전이 중요한거다.. 하나의 세계관을 정리해 놓은것이 백과사전이니.
오죽하면 학파중에 '백과전서학파'가 따로 존재할까)

'친일'의 의미는? 친일행위는 '현재'에 있어 단죄의 대상인가 아닌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다는 의미는?
'친일파'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정서는?
'친일파'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범죄인이 되는것을 의미하는가?

식민지 정부의 관료로서 활동했다면 그 직위가 문제가 되는가?
식민정부의 관료였다면 그 활동의 경중은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요에 의한 친일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친일행위를 왜 했는가?
일본 제국의 거대함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 아래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도모한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의 상황논리인가?

위 질문들이 토론과정에서 뉴라이트측이 제기했던 문제들의 예시이다.

그렇다. 어떻게 보자면 뉴라이트측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타당성이 있다.
(머리로는 알아먹되 가슴으론 인정못하는, 대충 그런 얘기가 되겠다)
사실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활동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고, 가장 골때린 부분이다.

"친일"의 범주는 어디인가?
친일행위를 범주화하는데 있어서 단 하나의 기준만 적용 가능한가?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을 판단하는데 있어, 친일/반일로 양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나도 모르겠으므로 패스.
사실 복잡한 문제다. 당시의 사람들은 친일/반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스펙트럼으로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스펙트럼의 어디부터를 친일로 구분지을 것인가가 핵심논점이 되겠다. 흘러가는 시간을 '시, 분, 초' 단위로 분절시켜놓은 시간개념이나, 갠지스 모래알만큼 수 많은 색깔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언어의 분절성 등과 마찬가지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너무나도 중요하고 값진 논의인 까닭에 쉽게 결론지어져서는 안될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친일행위의 범주화'가 불가능하므로 위원회의 활동을 평가절하하는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듯, 우리는 과거를 바라봄에 따라서 미래를 보고,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를 만들어 나간다.

현재를 장미빛 미래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 과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과거 대한민국 정부 초기의 역사적 과업이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한반도의 주민을 위한 정부로서 나아가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실패한 오늘날.. 비록 늦었다 할지라도 그 과업을 완수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3. 역사인식
아.. 정말 차이난다.
오죽하면 이번 100분토론의 타이틀이 "친일 논란! 역사복원인가 자해행위인가" 일까.

대충 아주아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현재 교과서에 기술중인, 일명 좌파적 역사인식에서는
'개항 이전의 한반도에는 근대화(평등과 자본주의)로 나아가려는 자생적 노력이 존재했으며(자본주의 맹아론), 일본 제국주의가 그것을 억압함으로써 자발적 근대화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함에 따라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가 되겠다.
(따라서 민족에 사악한(!)영향을 끼쳤던 부정적인 식민지 자본주의를 털어내고.. 뭐 그런거다)

반면 뉴라이트측의 역사인식은
'개항 이전의 근대화 기미는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존재하지 않았으며, 식민지 시기에서부터 일본의 자본이 유입되며 각종 회사가 설립되고 자본주의의 싹이 트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자본주의는 7~80년대를 지나며 발전했다!!" 정도이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7~80년대를 지나며 굳건해진 기존의 좌파적 역사인식은 좌측에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균형잡힌 역사관을 추구한다!!" 랄까.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5~80년대의 개발독재와 반공사상에 의한 국가의 안정화와 경제개발의 측면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비판하는 좌파역사학계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라는 얘기도 할 수 있다.

(모 선배가 이 글을 보았다면 "그래봤자 '근대'를 운운하는것 자체가 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어쩌구"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동의한다. 우리는 '근대'라는 단어를 발언하고, 사유함에 따라서 근대란 존재에 속박된다. 얽매인다. 물론 '근대'라는 것이 절대적 가치인지 상대적 가치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시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기간이 '근대'로 나아가려는 맑스사관에 역행하는 것이었느냐, 정행하는 것이었느냐..가 이 논란의 핵심이 되겠다.
(근대를 운운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맑스의 사생아가 되는것이다.. 내 논지가 좀 과격하다)
(위 얘기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좌파..로 통칭되는 주장들의 일반적인 역사 발전단계는, '근대 자본주의'를 지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며, 뉴라이트의 입장에서는 '근대 자본주의'가 그 역사 발전의 이상향이 되겠다. 즉, 좌/우이건 간에 '근대 자본주의'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 역사인식의 저변에는 맑스주의가 어렴풋하게나마 깔려있다고 본다. 물론 학자들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얘기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무리가 있고, 또한 사실 나같은 학부생 나부랭이가 뭐라 단언하기 힘든 문제다. 위에 지껄인 얘기들은 그냥 '일반론'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논란의 핵심이라면,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람들은 한반도의 근대화에 순기능을 했는가, 역기능을 했는가?

뭐, 한창 학계에서 논란중이고, 결론이 나지 않은(..아마 영원히 나지 않겠지만) 일이며, 내 스스로의 지식에 만족하여 얘기를 지껄일만큼 알고있지 않기때문에 일단은 패스.
위에서 언급했지만, 난 뉴라이트에 동의하지 않는다, 라고만 얘기하겠다.


4. 과거의 식민잔재 청산노력
토론과정에서 아주 잠깐 얘기가 나왔었는데..
이 얘기를 하려면 미군정과 해방 3년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때는 그야말로 '동란의 시대 혼란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간단하게 설명이 힘들다.;;;

문제는 해방 3년사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는거다.
(적어도 난 그렇게 본다)

해방 3년사를 지나며 이후 60년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영향을 줄 좌/우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는 특정 '세력'이 태동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일명 '친일관료', '친일자본'들이 미군정이 들어서며 계속 그 기능을 지속하였고, 이승만정부에서 그들을 포용하며 지금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다.

난감한 점은 그 계보가 지금까지 내려와, 아직도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물론 그 반대되는 세력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지만..

포스트 모던시대의 역사학에 대한 질문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인 까닭에, 역사학자가 그들 중 어떤세력과 가까우냐에 따라서 역사인식이 바뀌고, 또 현재관이 달라진다(그렇기에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세력구도(?)는 좌/우가 되는것이다).

위에서 말한 당위성 논란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현재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은 '정치'이다. 따라서, 정치를 하는데 있어 '역사적 과업'이라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정치수행의 최종목적이자 그 정치가의 철학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인식이 다르기에 정치인식도 다르다면?
혹은 정치인식이 다르기에 역사인식이 다르다면?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나 '역사학'의 영역을 떠나서, '정치학'의 길로 빠지게 된다(그렇기에 역사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정치철학에도 빠삭하다). 작금의 사태가 그렇지 않은가. 일명 좌파역사학을 옹호하는 민주세력, 일명 우파역사학을 옹호하는 보수세력. 모두 이루고자 하는 바가 다르며, 따라서 현재를 경영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과적으로, 친일과거사 청산에 대한 '당위성' 논란은 현재의 정치세력과 연관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권력'의 문제로 비화된다면... 뭐, 일종의 '정치세력 탄압'문제로 바뀐달까..
(차마 어디어디가 그 정치세력들이라 말은 못하겠다)



아래쪽에 뭐라고 좀 더 지껄여보다가,
아무래도 뜬구름 잡는 소리이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서 지웠다.

아무튼.. 내가 인문학을 선택했다는 것이 이럴때 유쾌하다고나 할까.

생각하는게 즐겁다.



Posted by 날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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